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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단상집#11. 내면의 무언가를 툭- 건드리는 순간

by 에디터윤슬 2025. 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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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른 냄새
보면 늘 기억의 밑바닥에 자리하고 있다. 코끝을 스친 어느 향에 불현듯 지나간 추억을 상기하게 만드는 이 후각의 언어는 잊힌 듯 잊히지 않음으로써 경계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감각이다. 오랜 시간 냄새라는 감각에 관심을 두고 《나를 기른 냄새》를 집필한 저자는 이러한 냄새의 속성을 섬세한 관찰력으로 파악하곤, 자신을 몰래 길러온 것이 다름 아닌 냄새임을 깨닫는다. 저자가 안전하다고 느낄 땐 언제나 냄새가 감지됐다. 문틈으로 들어오던 가족들의 아침 식사 냄새, 엄마
저자
이혜인
출판
청과수풀
출판일
2024.11.29

 

 

1.

지난주에 주문한 책이 출고 지연을 두 차례 겪고 드디어 집에 도착했다. 그중 한 권은 '나를 기른 냄새'. 코엑스 가는 지하철 안에서 책을 처음 펼쳤다. 열이 올라오는 따뜻한 의자는 책에 더 몰입하게 한다. 찬찬히 문장을 따라가다가 몰입을 넘어 애정을 갖게 하는 순간이 있었다.

[사람은 순하고 평화로운 순간만으로 자랄 수 없구나. 마음이 돌부리에 걸리는 그 순간을 외면하지 않을 때, 사람은 아주 조금씩 성장하는 거구나]

문장에 툭- 걸려 멈칫했고 이내 코가 시큰거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어떤 책을 좋아하고, 왜 책을 읽는지.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던 그때의 감정을 선명하게 표현하는 문장을 만났을 때, 내가 말하고 싶은 의견이었는데 논리적으로 말하지 못하겠어서 삼키고 있었던 걸 문장이 똑 부러지게 말해줄 때 큰 감동을 받는다. 그리고 그 감동을 또 느끼고 싶어서 계속해서 책을 읽는다. 그래서 소설보다는 에세이 경영과 같은 지식 서적을 더 좋아하는 걸지도.

그런 문장들을 발견하면 화면을 캡처하거나, 노션 페이지에 기록한다. 다시 보고싶을 때 리스트 속 문장들을 들여다본다. 문장을 발견하고 되새기는 일련의 과정이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2.

나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지구에서 태어나기도 했다.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반드시 한국 안에서만 인생의 모든 걸 할 필요는 없다.

세계여행을 다니면서 언제 어느 나라에서 살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을 매일같이 했는데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은 한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대다수이지만, 앞으로도 한국에서 주로 생활하는 사람일지는 확신이 없다. 꼭 법적으로 영주권 혹은 시민권을 얻지 않더라도(이룰 수도 있지만) 디지털노마드 혹은 해외 취업을 한 사람들처럼 해외가 내 주 생활권이 될 수 있지도 않을까. 세계여행 중에 내가 안정감보다는 도전이나 다양성 그리고 열린 선택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만이 이유는 아니다.

한국에서 사람들이 다른 사람 · 기사 · 콘텐츠 · 유행 등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불편함. 누가 조금 다른 길을 가려고 하거나 성장하기 시작하면 끌어내리려는 손가락질에 대한 불편함. 단순히 '의문이군' 물음표로 끝냈던 생각이 불편해졌다.

왜 사람들을 자기가 경험하지도 않았으면서 남들이 별로다-실패다-하면 그 의견이 정답이라고 생각할까. 모든 사람이 재미없다고 해도 나한테는 인생작일 수도 있는데 일단 보고 나만의 감상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사람들은 기사를 봤을 때 곧이곧대로 믿고 욕부터 할까. 전체 흐름과 내막을 찾아볼 생각은 왜 안 하는 걸까. 실제는 다를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왜 사람들은 남이 도전하는 것에 '굳이?' '지금 하기엔 늦지 않았어?' '안될 것 같은데' '누가 그렇게 했는데 실패했대'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까. 각자가 다양한 삶을 사는 것이 싫은 걸까?

그런 말을 하는 상대를 손절하고 싶고, 댓글에 답글을 달고 싶을 때가 많다.

세계여행 전에는 전혀 불편하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의 모든 점이 좋았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애국자가 따로 없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지금 생각해 보면 팔은 안으로 굽는 거라며 흐린 눈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경제적으로 여유롭다면 한국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데에 동의하고 나 또한 한국어가 가장 좋은 토종 한국인이기에 익숙함이 너무나 좋고 K콘텐츠는 좋아함을 넘어 사랑하지만, 물음표가 물음표에서 끝나지 않고 불편하거나 듣기 싫은 순간이 늘어나고 있다.

실제로 해외에서 잠시 일했다가 한국으로 왔는데 이런 이유를 못 견디고 아예 커리어를 해외에서 쌓고 있는 친구들이 있다. 이민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던 지인도 있다. 당시에는 '그렇구나' 가볍게 이해했는데, 세계여행 그게 뭐라고 그들의 생각에 공감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코엑스는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가 계속 되는 게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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