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이야기와 풍경이 선으로 이어지는 도시다. 작은 점들이 모여 선을 이루며 흐르는 역사의 이야기를 간직한 곳. 여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 아름다운 선들이 돋보이는 풍경이 머무는 곳이다. 경주에서 선을 따라 걷는 여행을 즐기는 방법이 되는 여행지 다섯 곳을 소개한다.
선들이 여는 아침, 삼릉숲
직관적인 이름을 가진 숲. 삼릉숲은 이름 그대로 세 개의 능이 모여 있는 숲이다. 숲을 찾아가기 전에는 삼릉숲을 지키는 것도 주인공도 능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숲 안에 들어서면 소나무들이 능을 지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헤매더라도 하늘을 향해 기어코 올라가는 대견함들이 세 개의 능을 감싸고 있다.
이른 아침의 삼릉숲은 사진작가들의 단골 출사지다. 아침 햇살이 빼곡한 나무들의 틈을 비집고 기지개를 쫙 켜는 풍경을 온몸으로 만날 수 있다. 나무들 틈을 비집고 햇빛이 두 팔 두 다리를 힘껏 뻗는다. 눈부신 기지개가 닿은 소나무와 들풀들도 덩달아 잠에서 깨어난 듯하다. 숲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이 더욱 선명하게 빛을 발한다. 바람에 살랑거리는 솔잎 소리에서는 생명력이 느껴진다. 구불구불한 소나무의 선과 그 틈으로 곧게 뻗는 햇빛. 선이 주는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곳이 삼룡숲이다.
유연한 선에서 느껴지는 역사의 중력, 대릉원
경주의 풍경을 선으로만 표현한다면 책 <어린 왕자> 속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과 같은 중절모 모양의 유연한 선을 반드시 그려야 할 거다. 곳곳에 있는 고분들의 둥근 모양을 빼고 경주를 표현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말은 경주 여행에서도 해당되는 조언이다. 어디서나 둥근 고분들이 잘 모이는 경주이고 수학여행을 경주로 간 기억이 있다면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게 다른 도시와는 얼마나 차별화된 풍경들을 만들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둥근 고분 하나하나에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 황리단길 옆에 언제나 묵묵히 자리 잡고 있는 대릉원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아는 혹은 모르는 거대한 고분들의 거대한 크기와 완만한 곡선은 자연의 일부처럼 흘러가면서도 그 자체로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낸다. 그 사이를 걸으면 시간여행자가 된다. 고분과 고분 사이를 잇는 길은 역사 위를 걷는 듯한데 그 길은 밝은 낮에도 웅장하다. 특히 대릉원에 위치한 천마총은 시간 속 거대한 점이다. 천마총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다양한 유물들은 신라인들의 정교한 손길과 그들의 사상, 신념을 담고 있다. 때때로 귀엽게 보였던 둥근 고분들이 만드는 역사의 장르는 결코 아기자기한 동화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인지하게 되는 순간이다. 묵직한 감상을 남겨주는 장편의 서사, 경주 대릉원을 걷는 행위는 그 서사 위를 걷는 것과 같다.
서사의 도시에서 읽는 한편의 이야기, 독립서점 <이어서>
경주 북문로에는 경주를 닮은 독립서점이 있다. ‘문장과 사람을 이어서’ ‘공간과 사람을 이어서’ ‘사람과 사람을 이어요’ 세 가지 의미를 담은 서점. <이어서>는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생각을 정리하며 여행의 여운을 이어가는 공간이다. 연결을 생각하게 되는 서점의 철학뿐만 아니라 고즈넉한 인테리어까지도 경주와 잘 어울리는 서점이다. 안으로 들어서면 차분한 우드 소재가 많이 쓰인 자연스러운 인테리어가 눈에 띄고, 연속적으로 뚫린 창가를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분위기는 완벽을 더한다.
‘이어서'라는 이름처럼 이곳은 경주 여행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중요한 장치다. 서가에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그 책들을 넘기다 보면 경주 여행에 예상치 못한 추억이 만들어진다. 책 한 권을 골라 조용한 서점 한쪽에 앉아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경주라는 도시가 가진 이야기의 속편처럼 나의 여행기도 채워진다.
가을의 선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풍경, 핑크뮬리 군락지
경주의 상징 중 하나인 첨성대는 그 자체로도 찾아갈 가치가 있지만, 가을철이 되면 새로운 가치가 더해진다. 바로 핑크빛 물결, 핑크뮬리가 군락지를 이뤄 활짝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첨성대의 둥글고 매끄러운 곡선을 뒤로한 채 펼쳐진 핑크뮬리는 옅은 바람에도 자잘한 선끼리 얽혀 흔들린다. 그 모습은 마치 경주가 간직하고 있는 긴 시간을 살랑거리는 선들로 표현한 듯하다. 이른 아침에 햇빛을 가득 받아 선명도가 높아진 풍경은 특히 장관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점점이 퍼져 나가는 분홍빛 잔디밭과 첨성대의 기하학적 곡선이 함께 어우러져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수학여행 그 이상의 감동, 불국사
수학여행으로 갔던 곳이라는 이유로 지루하게 생각했다면 꼭 다시 한번 찾아가자. 여전히 그대로인 장소를 나이라는 숫자. 그 이상으로 많은 것들이 변한 모습으로 다시금 찾았을 때의 색다른 반가움을 느낄 수 있다.
불국사는 단순히 과거의 기억에 머물지 않고, 매번 새로운 감동을 준다. 불국사 경내를 걷다 보면 천년의 시간을 관통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우직한 석조물과 목조 건물들은 짙어진 가을과 유독 잘 어울린다. 그 옛날 사람들이 지나갔을 시간의 선을 따라 걷는 기분은 묘한 설렘을 준다. 불국사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다보탑과 석가탑은 이미 정교함과 비례미로 유명한 지 오래지만, 그 위대함은 익숙해지거나 바래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처마의 유연한 선. 돌담의 단정한 선. 청운교와 백운교의 똑 부러진 선은 마음을 차분하게 다듬는다. 건축적인 아름다움이 여행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 본 내용은 매거진 <SWITE> 2014.11월호에 기고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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